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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안한 나날들 벌써 8월의 마지막 날. 오늘 씨디 케이스가 인쇄, 재단되어 도착했다. 이제 한땀한땀 공들여 씨디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내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디자인 전공 학사학위 취득자인 나에게 엄마가 내민 타협의 카드였다.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한다면 음악하는걸 인정해주겠다는 것이었다.엄마는 나에게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나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으며, 엄마가 나에대해 포기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나의 의지 반, 엄마의 권유 반으로 대학원에 갔다.종합대학의 돼지저금통 같은 특수대학원에 개설된 컴퓨터음악학과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겨우 한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했다. 그래도 거기서 신세사이저의 개념, 미디의 개념, 이런저런 하드웨어와 소프.. 더보기
비건 고구마 스프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은 겪으로 끓이게 된 비건 고구마 스프. 여봉봉이 아팠다. 속탈이 났었다. 먹는게 조심스러울 밖에. 밥을 짓네, 죽을 끓이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뭔가 뜨거운 국물을 먹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는 고구마, 냉장고에서 잠만 자는 콩국물급 두유. 이걸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1. 양파를 채썬다. 2.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는다. 소금으로 밑간을 한다. (버진올리브유로 볶으니 향이 너무 강했다. 향이 없는 기름으로 볶는것을 추천한다.) 3. 두유를 붓는다. (콩의 비린내가 좀 난다. 기호에 따라 두유의 양을 줄이는 것도 좋겠다.) 4. 쪄놓은 고구마를 껍질을 벗겨 냄비에 넣는다. 5. 도깨비 방망이로 간다. 간다. 또 간다. 6. 물을 부으며 농도를 조절한다. 7... 더보기
카페 - 숲 늘 다니던 길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게다가 그 가게가 내 취향이라면 더더욱. 용산 국제 업무지구 개발 계획이 무산된 이후 우리동네는 수리, 재건축, 새로운 상가의 입점 등으로 들썩들썩거린다. 우리 집 앞에 있던 내가 진심으로 좋아라하던 80-90년대의 흔적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사진으로 남겨 놓을걸... 아쉽다.동네의 변화가 아쉬움만을 안겨주던 날들 중 어느 날, 새롭게 단장한 아담한 한옥을 발견했다. 자주 지나던 그 자리는 쓰레기 더미를 방불케하는 폐허의 모습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달라졌나! 오오!한참을 바라 보았다. 처음엔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막 신장개업한 카페 숲.낡은 한옥을 개조해 이렇게 예쁜 카페를 만들었다. 눈에 거슬리게 화려하지도 .. 더보기
나M - 집시의 몸과 영혼을 기다린다 지난 일요일, 나M의 공연을 보았다.그녀의 음악적 동반자이자, 프로듀서이고,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한 정재영씨와의 인연으로 갈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나는 나M을 잘 몰랐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퍼스트 댄스' 음악 작업을 통해 정재영씨를 만나게 되면서 였다. 나의 노래인 '어디에나, 그대'를 기타로 편곡, 연주했고, 녹음 당시 보컬 디렉팅을 담당해 주었다. 음악작업 때문에 정소희 감독과 함께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의 그의 첫인상은 아, 귀여운 아저씨로구나,였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특히나 남성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서먹함이 있어 재영씨와의 첫 만남도 나에게는 긴장되는 일이었다. 녹음실에서의 녹음은 나에게는 무척이나 긴장되고, 신경쓰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작업이었는데, 정재영씨는.. 더보기
잔치의 자리에서 혐오를 보다 ​​ 오늘의 나들이는 종로 게이빈-스토구(맥주집)-그리고 대망의 친구사이 20주년 생일 파티였다. 파티는 종로3가 게이들의 거리를 행진하여, 매주말이면 게이로 꽉 들어차는 게이포장마차길에서 포장마차 몇 대 전세내어 노상 파티를 즐기는 것이었다. 행진하는 내내 손글씨로 쓴 플라카드를 든 혐오세력이 대열을 따라다니며 혐오의 말을 뿌려댔다. 우습기도 했지만 몹시 슬펐다. 두렵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행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충돌이 있었다. 궁금했다. 저들은 왜 저리도 열심히 혐오를 표하는걸까. 왜. 앳된 여성 한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백지에 쓴 구구절절 회개하라는 말들을 들고 행렬을 따랐다. 아 저 사람들의 절박함은 대체 뭐란 말이냐. 포장마차 골목에 도착했고 정의당에서 지원한 윙카가 열리고 근사한 .. 더보기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밀크씨와 만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며칠 후, 나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내가 살아돌아온다면 더 열심히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여행의 목적은 어머니의 사촌 동생, 나의 오촌 아저씨의 결혼식 방문이었다.며칠간의 제대로 된 미국식 혼인행사에 참석한 후, 어머니와 나, 캐나다 이민자인 이모와 샌프란시스코 시내 관광에 나섰다.시티투어버스를 타기위해 시청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다 화장실이 급해 시청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키는 시큐리티는 소지품을 샅샅이 검사하고, 검색대를 지나게 했다. 그 와중에 시티투어 버스와 화장실에 대해 묻는 용감한 이민자 아줌마, 우리 이모. 무시무시한 검색대를 통과해 시청사 안 화장실을 찾아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시청사 안을 .. 더보기
투쟁의 자격 ​​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루머가 한창이다. 거기에 대한 항변글이 속속 올라온다. 읽다보니 서글퍼진다. 아니 서러워진다. 이혼한것이, 금속노조의 노조원인것이 왜 이 사람의 싸움을 허락할 수 없는 이유가 되나? 금쪽같은 자식을 잃고, 내 살점같은 아이를 저 차가운 물에 잠기도록 방치한 이 국가를 상대로 그 책임을 묻는데 왜 무슨 자격이 필요한것인가? 내가 적절한 혼인관계에 들어있지 않다면, 내가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한다면, 이 공동체의 부조리한 장면을 만난다고 해도 침묵하고 모른척해야하는가? 누가 김영오씨에게 투쟁의 자격을 논하는가? 왜 자식잃은 아픔을 온몸으로 처절하게 표하는 이에게 왜 그 자신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가? 공감능력이 결핍된 이 공동체가 무섭다. 그런 이웃.. 더보기
노래 잘 해보자! with Ziihiion 내가 중요하게 하는 일 중 하나는 보컬 레슨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음악과 관련된 돈벌이를 하고 싶기 때문에 지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2004년쯤 처음 보컬레슨을 시작했으니 벌써 십년이 되었다.대안학교의 강사로, 찾아가는 노래 교실 프로젝트로 위안부 할머님들과 탈성매매 언니들과의 노래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로, 그리고 최근의 개인레슨의 강사로 까지... 다양한 대상들에게 다양한 성격의 노래 지도를 했다.처음부터 자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보컬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전문적인 교육기관-재즈아카데미라던가...-을 다녔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엔 너무 두려웠다.특히, 부단한 노력으로 득음을 했다거나, 음악적인 성취를 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더보기
커밍아웃했다. 어쩌면 오랫동안 준비한 것일지도, 어쩌면 우발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레즈비언으로 커뮤니티에 데뷔한 것은 9년, 지금의 파트너를 만난것은 7년, 지금의 그녀와 남은 날들을 함께 하고싶다,고 결심한 것은 4년, (3년? 2년? ㅎㅎ)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3년, 올 일년은 점점 커밍아웃 자신감을 키웠고,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더, 더, 더 비밀과 숨김의 상태를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12월 9일 할머니와 엄마께 커밍아웃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동성애 허용 반대 엉아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과 멸시를 견디면서, 나는 어느 새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몇몇이 기독교인인)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최근 몇년간의 나는 관대하고.. 더보기
아티스트 데이트 아티스트 데이트아티스트 웨이 책 43페이지 부터는 아티스트 데이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내가 가장 못하겠는 것이다. 기분전환을 위해 자신 내면의 아티스트와 온전하게 만나는 시간을 보내라는 것인데,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을 내기가 그렇게 어렵다.'아티스트 데이트에는 당신 자신과 내면의 아티스트, 즉 당신의 창조성이라는 어린아이 외에는 아무도 데려가서는 안 된다.' (44p)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기상하자마자 모닝페이지. 아침식사를 대신하는 차 한잔 마시기. 눈에 보이는 집안 일 하기. 그리고 컴을 켜고 페이스북 잠깐 들여다 보기. 컴으로 해야할 일 해결하기. 점심 먹기. 점심먹고 또 눈에 보이는 집안 일. 일주일에 한 번은 화초에 물주기. 그러다보면 오후에는 단전호흡 교실 가기. 다녀와서 샤워. 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