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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날들

잔치의 자리에서 혐오를 보다



오늘의 나들이는 종로 게이빈-스토구(맥주집)-그리고 대망의 친구사이 20주년 생일 파티였다.

파티는 종로3가 게이들의 거리를 행진하여, 매주말이면 게이로 꽉 들어차는 게이포장마차길에서 포장마차 몇 대 전세내어 노상 파티를 즐기는 것이었다.

행진하는 내내 손글씨로 쓴 플라카드를 든 혐오세력이 대열을 따라다니며 혐오의 말을 뿌려댔다. 우습기도 했지만 몹시 슬펐다. 두렵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행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충돌이 있었다.

궁금했다. 저들은 왜 저리도 열심히 혐오를 표하는걸까. 왜.

앳된 여성 한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백지에 쓴 구구절절 회개하라는 말들을 들고 행렬을 따랐다. 아 저 사람들의 절박함은 대체 뭐란 말이냐.

포장마차 골목에 도착했고 정의당에서 지원한 윙카가 열리고 근사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동성결혼의 아이콘인 김조광수 언니가 연단에 섰다. 포장마차 한켠에 앉아 행사를 지켜보던 나는 눈물이 났다. 감개가 무량했다.

홍석천 언니는 친구사이에서 수여하는 인권상을 수상했고, 그 장면, 그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이 모든 행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도 '… 죽이리라'란 메시지가 적힌 붉은 현수막을 끌고 무대앞을 지나는 저 사람이라니.

윙카의 무대에서는 친구사이에서 준비한 영상이 나왔고 한 컷 한 컷 지나가는 사진들에 등장하는 얼굴들, 그 존재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준비된 케익이 연단에 올라가고 지보이스의 노래 '벽장문을 열어'가 울려퍼졌다. 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엉엉 울고싶었다. 동성애자임을 드러내고 종로 뒷골목을 점거하고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다니. 흑 ㅠㅠ

고마웠다. 친구사이가, 그리고 다른 모든 성소수자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이렇게 내 존재를 긍정해주고 축복해주어 고마웠다.

혐오하는 저이들을 보아도 괜찮아. 나에겐 '우리'가 있으니까.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