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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잔치의 자리에서 혐오를 보다 ​​ 오늘의 나들이는 종로 게이빈-스토구(맥주집)-그리고 대망의 친구사이 20주년 생일 파티였다. 파티는 종로3가 게이들의 거리를 행진하여, 매주말이면 게이로 꽉 들어차는 게이포장마차길에서 포장마차 몇 대 전세내어 노상 파티를 즐기는 것이었다. 행진하는 내내 손글씨로 쓴 플라카드를 든 혐오세력이 대열을 따라다니며 혐오의 말을 뿌려댔다. 우습기도 했지만 몹시 슬펐다. 두렵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행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충돌이 있었다. 궁금했다. 저들은 왜 저리도 열심히 혐오를 표하는걸까. 왜. 앳된 여성 한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백지에 쓴 구구절절 회개하라는 말들을 들고 행렬을 따랐다. 아 저 사람들의 절박함은 대체 뭐란 말이냐. 포장마차 골목에 도착했고 정의당에서 지원한 윙카가 열리고 근사한 .. 더보기
커밍아웃했다. 어쩌면 오랫동안 준비한 것일지도, 어쩌면 우발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레즈비언으로 커뮤니티에 데뷔한 것은 9년, 지금의 파트너를 만난것은 7년, 지금의 그녀와 남은 날들을 함께 하고싶다,고 결심한 것은 4년, (3년? 2년? ㅎㅎ)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3년, 올 일년은 점점 커밍아웃 자신감을 키웠고,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더, 더, 더 비밀과 숨김의 상태를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12월 9일 할머니와 엄마께 커밍아웃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동성애 허용 반대 엉아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과 멸시를 견디면서, 나는 어느 새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몇몇이 기독교인인)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최근 몇년간의 나는 관대하고.. 더보기
엄마, 나 엄마에게 커밍아웃하려고 해. 엄마 어쩌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말로 확인하고 싶어. 내가 레즈비언이라도, 동성애자라도, 나와 한 침대를 쓰는 이가 동성이라도,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지지할거라고, 세상이 나를 손가락질 하고, 나를 아프게 해도, 나를 더럽다고 하고, 나를 변태, 비정상이라고 해도, 그래도 내 편 일거라고, 확인하고 싶어. 그렇다고 말해줘. 요즘 너무 힘이 드네. 엄마에게 아무일 없는 듯, 나는 이렇게 마음의 폭풍을 겪고, 정신적인 폭력을 겪고 있으면서도, 엄마를 만날 때는 늘 웃으면서 아무일 없는 척 하려니, 힘이 드네. 이번에는 한 번쯤, 엄마 입장에서 말고 내 입장에서, 내 고통을 헤아리며, 왜 그렇게 힘든 길을 택한거냐고 묻지말고, 분석하거나, 생각을 말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말고, 이번 한 번만은, .. 더보기
누가 나의 존재를 지우려하는가 "동성애 허용 법안 반대 국민연합"차별금지법안에 성적지향 조항이 포함됐던 것에 분기탱천한 어떤 종교집단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단체이다. 동성애, 허용, 법안, 반대, 국민연합 이라니. 이 우스꽝스러운 단어들의 조합이라니. 일단은, 동성애라는 표현에는 감사한다. 동성연애, 호모, 변태,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던 미개한 족속들에서 진화한 증거이니. 그런데 허용이라니. 이 부분에 다다르면 나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허용은, 막았어야 할 것을 막지 못하고 받아들이다,의 뜻이라고 다음 사전은 말하고 있다. 허락하고 용납되는 것을 뜻한다고도 한다.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나는 이미 태어났으며, 나는 이미 숨을 쉬고 있으며, 나는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는 이미 사랑하고 있으며, 나는 이미 행복하다.. 더보기
동성애 혐오가 두렵다 최근 나는 참 행복했다. 가족 안에서 유사 아우팅을 당해도, 그래도 나는 내 사랑 언니와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밤인가, 동성애, 이반 검열 등등의 단어들이 다음 아고라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이게 왜? 왜 갑자기? 왜 지금?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꼴 보수 또라이 기독광신도들의 수 많은 끔찍한 댓글들을 봤다. 동성애 허용하는 법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드높이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찬 혐오를 봤다.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라는 소리가 높았고, 나는 불과 몇시간 후 법안에서 그 조항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식간에 법안은 법무부를 떠났고, 법제처라는 곳으로 갔다. 이 과정 자체가 끔찍했다. 어떤 기독교 단체들이 만든 동성애 허용 법안 .. 더보기
레즈비언 여보~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서로를 여보라고 부르고 있다. '여보~' 처음엔 이름을 부르다가, 그 다음엔 언니, 자기,라 부르가다, 애기, 내 사랑, 내 새끼 등등등 애칭으로 부르다가, 최근 몇 년간 부르는 호칭이 여보다. 이성애 부부 관계에서 추천되는 호칭이라 옛날에는 싫어라 했던 것 같은데,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여보가 자연스럽다. 따뜻하다. 견고하고, 포근하고, 다정하고, 그리고 존중받는 기분. 그렇지만 부작용이 있다. 공공 장소에서는 좀 주의해야한다. 장보러 갔다가 불쑥, 식구들이랑 있는데 불쑥, 길에서, 산책하다가, 버스안에서, 지하철에서 불쑥, 여보~하기도 한다. 지난 여름 울 엄마와 울 여보, 이렇게 셋이 수안보에 여름 여행을 갔다. 엄마가 우리에게 제안한 은근슬쩍 가족여행. 4박5일이라는 긴 일.. 더보기
얼렁뚱땅 엉터리 커밍아웃 할머니께서 물으셨다."그 친구와는 여전히 살고있는게냐?"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다."네, 잘 살고 있어요."그리고 묻지도 않았는데 덧 붙였다."우리 둘이 평생 그렇게 같이 살기로 했어요. 서로 의지하면서요. 가족으로요." 우리 할머니 말씀."그 친구도 결혼 안한다니?" "네"라고 대답하니, "그래 그렇게 살려면 돈을 잘 벌어야 한다.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력이 있어야 해." 그래서 말씀드렸다."둘 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뭐."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자신만만하게, 명랑하게, 또박또박 내 친구와 나는 평생을 함께 살거라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우리가 한 침대에서 뽀뽀에 포옹에 부비부비까지 한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싶었지만, 뭐 그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어 꾹 참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