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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생각들

2013/9/14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하지만, 난 결혼제도에 속하고 싶지는 않다. 혼인식은 하고 싶은데, 그건 우리의 삶을 서로 축하하는 의례로 갖고싶은 축제. 지금까지 둘을 성장시켜서, 지금까지 관계를 잘 만들어와서 장하다고 서로 칭찬하는 그런 시간과 의식을 갖고 싶은 것. 배타적 1:1 관계를 좋아하지만, 내가 그것을 선언하므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관계의 형태들에 잣대를 들이대는 꼴이 되는 것이 싫다. 나는 모노가미가 정답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로맨스를 기반으로한 관계만이 모범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결혼이란 그런것이다. 아직도… 나는 평생 이 파트너와 살고 싶지만 그것을 선언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결혼이 전혀 새로운 의미와 내용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럼 한 번 생각해볼수도 있겠다. 지금의 결혼이라면 .. 더보기
2014/9/15 오늘 가족들과 외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왔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할머니댁으로 가면서 '나는 가족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가? 가족들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가? 가족들을 사랑하기 위해 너무 많은 애를 쓰는건가?' 생각했다. 그러다, 자식을 키우는 어미들 생각이 났다. 그 아비들 생각도 생각도 잠깐 했다. 그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가, 그들의 24시를, 일주일을, 한 달을, 일년을,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는 내리사랑 대신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또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내 평생의 일부분을 잠시 내놓는 것이 아닌가,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진심으로 엄마와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가두지 말아야지. (퀴어주제에 너무 너무 너무 가족주의자.. 더보기
2017/9/15 나는 아직도 9개월전 진희를 보낼때를 후회한다. 굳어버린 몸을 안아주지도 못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하룻밤도 함께 보내지않고 새벽에 화장장으로 달려갔을까. 나는 죽음이 무서웠다. 이별이 싫었다. 생명이 빠져나간 굳은몸을 안기 두려웠다. 너무 미안하다. 끝도없이 미안하다 말해도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것 같다. 진희의 주검이 얼른 '제 자리'를 찾길 바랬다. 옷방 한구석에 골판지 상자에 누워 처치곤란한 난감함으로 머물지 말고 안식할 수 있기를. 생명으로 존중받을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도… 아쉽다. 내 새끼를 그렇게 보내버려서… 작별이 충분치 못해서. 아리고 아리다. 더보기
2017/9/18 지난 주 기록. 9/16 토요일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청소년 젠더(페미니즘) 특강 역시 나는 청소년들 만나서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대상은 14-16세의 소녀, 소년들이었다. 뭉클했던 순간은, '잘 몰라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하던 남자 친구가 '네 생각은 소중해요. 그걸 붙잡았다가 들려줘요.'했더니 그 다음부터 생각하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을때. 예뻐라. 듣기에 기뻤던 후기는, 다른 친구들도 이 수업을 들었으면 좋겠다,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소중하다는걸 깨달았다,는 얘기들.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 강사로 섭외하세요~) 9/17 일요일 제6회 이주민예술제 사회/진행 신도림역 1번 출구 앞 야외 무대에서 진행되었다. 열린공간이라 의미있었다. 우리.. 더보기
2017/9/19 #늙어간다는것 - 책읽기용 안경을 맞췄다. - 스마트폰을 들여다볼때 근시용 안경은 벗어야한다. (고양이들 발톱을 깎을때, 이빨을 닦을때) - 콘택트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할때는 확대경이 필요하다.그러하다. 여성청소년들이 즐기는 야한 텍스트는 팬픽/BL과 인터넷소설 남성청소년들이 즐기는 야한 텍스트는 주로 야동여성들에게도 있다. 야한 즐거움.+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자면, 할리퀸 로맨스, 하이틴 로맨스를 보며 성적 즐거움을 알아갔다. 폭력적인 장면도 많아 섹스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기도 했지만… ++ 내가 처음 도색물로 접한 포르노 영상, 잡지는 무척 역겹고 징그럽고 불쾌한 것, 두려운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렇다. 더보기
2017/9/23 오늘 일정 음감회/파티 소박하게, 그렇지만 사랑 넘치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특히 어머니께서 함께 해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엄마앞에서 마음껏 레즈비언, 동성결혼, 동성애 얘기를 했고 엄마는 함께 웃고 감동하며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겨주셨다. 커밍아웃 십년만에 벌어진 일. 엄마 감사드리고, 사랑해요. 저녁 친구사이 책읽당 낭독회에서 대기중이었던 나는 한 낭독을 듣고는 울고말았다. 목이 꽉 막혀버렸고… 무대에 올라가서 혼신의 힘을 다해 접신해 노래하려고 했다. 게이들과 보낸 뜨거운 밤. 그리고 퀴어 에네르기파 가득했던 하루. 오늘은 또 참 좋았다. 행복하고 충만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더보기
나의 불안한 나날들 벌써 8월의 마지막 날. 오늘 씨디 케이스가 인쇄, 재단되어 도착했다. 이제 한땀한땀 공들여 씨디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내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디자인 전공 학사학위 취득자인 나에게 엄마가 내민 타협의 카드였다.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한다면 음악하는걸 인정해주겠다는 것이었다.엄마는 나에게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나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으며, 엄마가 나에대해 포기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나의 의지 반, 엄마의 권유 반으로 대학원에 갔다.종합대학의 돼지저금통 같은 특수대학원에 개설된 컴퓨터음악학과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겨우 한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했다. 그래도 거기서 신세사이저의 개념, 미디의 개념, 이런저런 하드웨어와 소프.. 더보기
아... 알리... 나는 이 가수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젊은 그대"를 인상적으로 불렀다는 사실로 그저 이름 두 글자 기억할 뿐이었다. 그런 이 가수를 둘러싼 뉴스들이 등장했다. 첫 뉴스는 신곡 "나영이"에 대해 나영이의 아버지가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것과 하루 이틀 후 알리 자신이 성폭력 생존자라는 뉴스였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첫째는, 대체 자신의 얘기를 왜 "나영이"라는 이름을 빌어 노래로 완성해야 했을까? 둘째는, 음반 전량 수거 조치에 따른 후속 마무리로 꼭 알리의 아버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아픈 경험을 그렇게 드러내야 했을까? 셋째는, 알리의 음반을 프로듀스한 관계자 중 "나영이"라는 제목을 숙고하도록 조언할만한 사람이 없었을까? 넷째는, "나 역시 성폭력 .. 더보기
누가 아줌마가 되는가? 몇 년 전부터 나는, 스스로를 아줌마라 칭하게 되었다. 애인과 함께 살게 된 지 올해로 만 10년, 11년째 함께 살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결합이 그러하듯, 결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성애자들의 동거와도 다른, 전혀 다른 개념의 시민결합, 혹은 거주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나의 마음과 몸,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줌마"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누가 아줌마인가가 궁금해졌다. 첫째, 결혼은 아줌마의 정체성과 위치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결혼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혼을 했거나 사별을 한 경우, 아이가 없으면 아줌마로 사회적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이러한 싱글 여성들은 다시 혼인관계로 진입하지 않고는 아줌마의 지위를 얻기 힘들다. 두번째, "아이"다. 출산과 양육의 경.. 더보기
솜틀집 방문기 내 나이쯤 먹은 솜이불. 5-6년전에 솜틀기를 했는데, 숨이 다 죽어서 큰 맘먹고 다시 틀기로 했다. 숨죽은 솜이불은 무겁기만하고 따뜻하지 않다. 먼지도 많고. 이전에는 현관앞에 붙어있던 솜틀집 명함을 보고 전화하고, 영업하는 아주머니가 이불을 가지러 오고, 요구사항과 함께 이불을 보내고, 작업이 완료된 이불을 배달을 하는 아저씨를 통해 받고, 하는 과정을 거쳤다. 비교적 간단하고 공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 있는, 그런 "남의 일"의 한 종류였다. 그런데 최근 TV에서 솜틀집에서 불량솜을 섞는다느니, 솜을 바꾼다느니 하는 등의 솜틀기 윤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을 프로그램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에 나의 까다로운 파트너는 솜트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솜틀집을 찾겠다고 했다. 여러 날동안 솜틀집을 찾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