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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생각들

누가 아줌마가 되는가?


몇 년 전부터 나는, 스스로를 아줌마라 칭하게 되었다. 

애인과 함께 살게 된 지 올해로 만 10년, 11년째 함께 살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결합이 그러하듯, 결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성애자들의 동거와도 다른, 전혀 다른 개념의 시민결합, 혹은 거주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나의 마음과 몸,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줌마"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누가 아줌마인가가 궁금해졌다. 

첫째, 결혼은 아줌마의 정체성과 위치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결혼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혼을 했거나 사별을 한 경우, 아이가 없으면 아줌마로 사회적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이러한 싱글 여성들은 다시 혼인관계로 진입하지 않고는 아줌마의 지위를 얻기 힘들다.

두번째, "아이"다. 출산과 양육의 경험은 아줌마 정체성 획득에 중요한 요소이다. 출산의 고통을 경험하고, 양육하면서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경험을 해야, 아줌마 공동체로부터 부여되는 당당한 아줌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세번째, 살림이다. "사는 것"과 관련된 기본적인 모든 행위. 먹고, 자고, 입는것과 관련한 모든것을 관리하는 것을 살림이라고 하고, 아줌마는 이것의 총괄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네번째, 외양이다. 아줌마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외모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을 쓴다고 해도 트렌드나 외부의 시선에 신경을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과 관련해 합리성을 고려한 옷차림과 머리모양, 화장, 몸매를 고수하는 것이다.

다섯째, 소비패턴이다. 아줌마들은 자신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신의 영역,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 소비한다. 주로 살림과 관련된 기구(가전제품, 청소용품 등)를 사거나, 식재료를 구입하는데 많은 돈을 쓰고, 시간을 투자한다.

여섯째, 직업의 유무이다. 전문직과 정규직의 경우 특별한 노력이 없이는 아줌마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 사회에서의 직책이나 직업으로 불리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비정규직이나 비전문직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아줌마로써 인정받는 것이 다소 수월하다.

일곱째는 오지랍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외부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다. 많은 경우 아줌마를 가족 이기주의에 빠진 이기적인 존재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아줌마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인 가족의 관리 총책임을 맡고 있기때문에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실상 아줌마들은 불의를 보거나, 교정이 필요한 현장에 즉각 개입하여 자신의 사회적 위치(오지라퍼 아줌마로써의 명예로운 위치)를 십분 받아들여 소명을 다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도, 갈등 상황에서도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에도 개입하여 사건을 중재하거나 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와 아줌마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결혼, 사회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나는 타인과 시공간을 나누고,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출산, 요게 좀 걸리지마는... 양육, 우리 커플은 서로의 내면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한다. 그래서 지금은 서로 많이 자랐다. 살림, 우리 가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주로 나의 파트너가 담당하지만, 그 중요함은 절대 잊지 않는다. 외양, 그렇다 우리는 그런 외양을 갖고 있다. 외부의 시선따위, 트렌드따위 신경쓰지 않는... 소비패턴, 나는 물론 기계덕후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벌이의 많은 부분을 기계를 구입하는데 사용하지만, 나의 파트너는 새로운 가전을 장만하며 뿌듯해한다. 아! 청소도구도 덕질 아이템 중 하나이다. 직업, 그렇다. 우리에게 아줌마의 지위를 획득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비전문직이며, 비정규직... 오지랍, 우리는 둘다 오지라퍼이다. 나는 주로 청소년들에게 말거느라 - 쓰레기 거기 버리지 마라, 다른 애 때리지 마라, 내 파트너는 노인들 모시느라 - 길 잃은 노인 집 찾아주기, 무거운 짐 든 노인 짐 들어주기, 그리고 길 모르는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안내하기.

아줌마,라는 명칭은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하지 않으며, 종종 혐오의 대상이 되고, 사회의 공동체성을 좀먹게 하는 존재라고 분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여성의 현재의 위치를 고려하고, 후기 자본주의, 시장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각박하게 만들고 있는 이때, 오지라퍼이며, 가족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는 아줌마들이 여전히 부정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존재들인가?

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줌마이지만, 아줌마를 새롭게 읽고자 한다. 사실은 아줌마들이 있기에 이 각박하고 황폐한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너무 결연하가? 급하게 쓴글이니 추후 수정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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