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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생각들

솜틀집 방문기

내 나이쯤 먹은 솜이불. 5-6년전에 솜틀기를 했는데, 숨이 다 죽어서 큰 맘먹고 다시 틀기로 했다. 숨죽은 솜이불은 무겁기만하고 따뜻하지 않다. 먼지도 많고.

이전에는 현관앞에 붙어있던 솜틀집 명함을 보고 전화하고, 영업하는 아주머니가 이불을 가지러 오고, 요구사항과 함께 이불을 보내고, 작업이 완료된 이불을 배달을 하는 아저씨를 통해 받고, 하는 과정을 거쳤다. 비교적 간단하고 공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 있는, 그런 "남의 일"의 한 종류였다.

그런데 최근 TV에서 솜틀집에서 불량솜을 섞는다느니, 솜을 바꾼다느니 하는 등의 솜틀기 윤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을 프로그램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에 나의 까다로운 파트너는 솜트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솜틀집을 찾겠다고 했다. 여러 날동안 솜틀집을 찾은 결과 그 중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그렇다고 해도 상봉동. 우리집은 용산.)으로 이불을 싸들고 찾아가기로 했다.

전화통화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마음이 상했다. 전화를 받는 아주머니의 쌀쌀한 태도 때문이었다. "솜 바꾸고 그런짓 안해요.", "그 시간에 오면 솜 못 틀어줘요. 배달 나가는 시간이라니까." 등등. 그래도 어쨌든 찾아가 보기로 했다.

남들은 출근하는 시간에 우리는 솜틀러 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9시. 솜틀집의 직원들은 7시 부터 시작된 작업으로 벌써 솜털을 하얗게 뒤집어 쓰고 있었다. 솜틀집은 2차선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었고, 이전에는 다른 업종이었던 듯 상가 2채의 벽을 허물어 솜트는 공장(이라고 해봐야 1-2평이나 될까?)과 속싸개(보송하게 틀어진 솜은 면으로 된 안감으로 싸서 꿰맨다.)공정을 진행하는 온돌방, 이불보 등을 제작하는 미싱다이가 놓인 작은 작업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불 네채를 들고 등장한 우리들에게 친절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수줍은 얼굴로 솜트는 기계를 보려고 하자, "그렇게 지켜보지 않아도 솜 바꿔치기 하거나 그러지 않아요."라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 저희가 이런 기계에 관심이 많아서요."라면서 마음속 반쯤 차지하고 있었던 방문의 의도를 내뱉었다. (나머지 반은 그 아주머니 대답의 내용이었다.) 우리 대답때문이었는지 고개를 빼고 기계를 들여다보는 우리에 대한 시선은 좀 더 부드러워졌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우리 이불의 속싸개를 칼로 좍좍 찢고는 솜을 써는 작은 전동 톱을 이용해 사방 40cm의 크기로 일정하게 자르고 "거기 솜 섞이지 않게 따로 잘 해"라며 기계를 다루는 기사에게 당부했다. "솜이 좋네요."라며 우리 솜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한 동안 솜트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처음의 의도는 "감시하겠다"는 다소 불순한 의도였지만, 작업을 지켜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 솜트는 작업으로 인해 공기는 몹시 혼탁했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솜트는 기계의 모터와 벨트는 위험해 보이기 까지 했다 -, 그리고 이렇게 일하는 이들에게 전화나 걸어 의심에 가득찬 목소리로 "솜 바꿔치기 하고 그러는 거 아니죠?"는 류의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모욕적이고, 무례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노동의 과정이 모두 가려진 그런 세상에서 살고있다. 내가 신고있는 이 신발이, 내가 먹고 있는 이 음식이 누구의 손을 거쳐, 어떤 과정으로 나에게 오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이야기를 갖게 되는지 전혀 모르는 채, 혹은 전혀 모르기를 강요당한채로 살아가고 있다.
솜틀집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내가 의심을 거두고, 그들의 작업 과정과 삶에 관심을 갖는 순간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통합적인 자아의 한 인간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 솜이불을 트는 노동으로부터 이 노동자들을 소외되도록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우리는 그 노동의 결과에 대한 깊은 감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솜트는 비용 몇 만원이 결코 아까운 돈이 아닌것을 알게 되었고, 당연히 지불해야하는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업자들 역시 우리가 그들의 작업을, 노동을, 수고를 감사한 마음으로 존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조금은 쌀쌀맞게 우리를 대했던 아주머니는 돈을 지불하고 가려는 우리를 붙잡아 예쁜 베개커버 두 장을 더 얹어 주었다. 폭신한 솜이불을 잘 덮으라며,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참 마음이 훈훈해지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