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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생각들

차라리 지하철에 노약자석을 없애라!

우연히 아고라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고라에는 임신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겪은 억울하고도, 화가 날 만한 일을 적은 "지하철에서 노인과 싸워버렸습니다" 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글을 읽고는 그 여성의 억울함과 노여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그 아래에 달린 댓글 때문이었습니다.

댓글에는 무시무시한 노인혐오가 담겨있었습니다.
몇몇의 댓글은 "어르신"과 "노인네"를 구별하며,
존중받을 수 있는 나이든 자와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나이든 자를 구분하였습니다.

나도 종종,
아니 자주,
짜증나게 만드는 나이든 자들을 공공장소에서 만나곤 합니다.
몹시도 화가나고, 그 공간을 함께 나누는 것 조차 힘이 들때도 있습니다.
어떨때는 글을 쓴 여성처럼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지하철 안에서 누가 "더 약자"일까, 누가 "더 주변인"일까 생각해 봅니다.
지하철을 탄 공짜 손님인 "노인" 혹은 "노인네"라고 불리는 그 나이든 자들은 
이미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분류되고, 
당연히 일자리를 잃고, 돈을 벌지도 못하고, 
가족들로부터 가장으로서의 권위도 존중받을 수 없는,
설 자리를 잃은, 제 역할을 잃은, 잉여인간, 
얼마후면 삶이 스러질 유효기간이 다 된 생명인 것입니다.
아마도 그 나이든 자들은 자신의 그러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참한 처지를 알량한 노약자 석을 통해 보상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내주지 않는 자신들의 자리를 지하철 한 귀퉁이 후미진 노약자 석에서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댓글을 발견한 곳이 아고라가 아니었다면 그리 놀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촛불들이 모여들었던 곳,
그곳에서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목소리가 그렇게 크게 울리다니.

얼마 전 읽었던 한 여성사회학자의 글(노약자석을 통해서 읽는 공간의 문화정치)이 떠오릅니다.
논문에서 연구자는 영국, 독일 지하철의 노약자석과 
한국 지하철의 노약자석의 명칭부터 배치까지 비교하며,
오히려 한국의 노약자석이 세대간의 분리와 단절을 가져오며,
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선한 의지를 상실하게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슴을 움직이는 사회학 논문을 읽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노약자석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노약자들을 지하철 양끝으로 내몰며,
남은 비노약자석을 그들이 앉지 말아야 할 자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분리 된 두 공간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도록,
공간의 단절로 세대간 소통의 단절까지 가져오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차라리, 지하철에 노약자석을 없애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