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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날들/2007 마이아 다이크

당신의 생일



어제는 당신의 생일이었습니다.


그저께 밤 우리는 작은 일로 다투기 시작해 생일이 되던 자정을 당신은 슬픔에 싸여, 나는 노여움에 싸여 그렇게 각자의 침대에서 보냈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우리는 각자의 방문을 턱하고 닫으며 마음이 아직 풀리지 않았음을,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았음을, 노여움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표시했습니다.

나는 숨쉬기가 필요했고,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마실을 다녀오면서, 급 반성했습니다.

당신은 생일 맞은 소중한 사람인데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당신의 생일은 나에게 그 어떤 날 보다 중요한 날인데, 눈물로 맞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제 밤 당신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얕은 꾀를 부렸습니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당신이 좋아할만한 불량식품들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신이 어떤 과자를 좋아하는지, 어떤 라면을 좋아하는지, 도통 고를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직 당신을 다 알지 못하는 구나.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7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나는 당신이 어떤 과자를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꾀가 얕아 당신의 마음을 푸는 것에은 실패 했습니다.


마실을 다녀 온 나는 쌀을 씻고, 미역을 불리고, 저녁으로나마 당신에게 생일상을 대접하기 위해 부엌일을 시작했습니다.

두시간여를 부엌에서 뚜닥뚜닥 거리고 부족하지만 한 상 차렸습니다.

상 위에는 베란다 화분에서 거둬온 노랑장미와 분홍 제라늄을 꽂은 갈색 유리병을 놓고, 붉은 색 식탁깔개를 깔고 당신의 만 나이 숫자만큼의 초를 놓고, 불을 붙이고, 당신이 혼수라며 사온 어여쁜 수저를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엽서에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지 못한 죄인이 사죄하는 마음으로 소박한 상을 차렸다고, 이제 노여움을 풀고 정성을 받아 달라고 써서 방안에 앉아있는 당신에게 줬습니다.


고맙게도 당신은 내 마음을 받아줬고, 우리는 서로 안고 마음을 보듬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우리는 왜 싸운걸까요?

아마도 다른 아픔때문이었겠지요.

당신은 당신의 아픔때문에, 나는 내 아픔때문에..


그런 이면의 아픔도 헤아리고, 들여다 볼 수 있는 공력이 생긴다면 좋겠네요.


여보 사랑하고요.

오늘 밤 우리 꼭 안고 잡시다. ♡


[200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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