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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별이 졌어요.



정말.....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아직도 싸워야 할 날들이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큰 형, 큰 선배, 큰 동지 같은 당신이 떠나셨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혼자 남겨질 때면, 문득 문득 가슴이 너무 아파서 흑 하고, 꺽 하고 흐느낌이 절로 나와요.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세상을 버릴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가슴이 먹먹하고,
큰 주먹같은 것이 식도를 거슬러 오르는 듯이 아파요.


당신을 위한 노래

당신이 그리워서 지난 이틀동안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 근처를 걸었어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다 눈물이 왈칵왈칵 솟아서,
목이 메여서, 힘들었어요.
20년 전에 충분히 불렀다고 생각한 그 노래를 어제 가슴 깊이 공감하면서, 뜨겁게 울면서 불렀네요.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거리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절을 올리자니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어요.
그렇게 당신과 이별하고 싶지 않았어요.
잘 차려진 분향소에서, 잘 차려입고, 예를 갖춰 인사하고 싶었는데,
경찰차에 겹겹이 둘러싸인채,
경찰들의 투구와 방패앞에서는 당신과 이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이틀이나 그 앞에 갔지만 절을 올리지 못했네요.

지.못.미.

생전에 당신을 미워한 적도 있었어요.
이라크전쟁에 파병을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을때,
당신이 몹시 미워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어요.

한미 FTA를 하겠다고, 추진하는 당신에게 몹시 실망해,
당신의 임기말 시청앞에서 있었던 총궐기대회에 나갔어요.

차별금지법, 제대로 만들지 않고, 성적지향을 비롯한 여러 조항을 삭제한 법안이 통과되려고 할때도 당신이 미웠어요.
그래서 당신이 임기를 마치고 쓸쓸하게 봉하마을로 떠날때, 별로 섭섭하지도 않았어요.
당신이 그리울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새 정권이 들어서고,
새 정부의 첫 번째 실책으로 거리는 온통 촛불로 뒤덮히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그리워 할 때도 나는 별로 그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당신이 돈을 받았다고,
당신의 가족이 적절치 않은 돈을 받았다고,
그런 이야기가 온 매체를 덮을때,
당신이 그럴리가 없다고, 그렇게 믿었어요.
새 정권이 당신이 사랑받는 것을 질투해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당신이 아무리 혹독하게 검찰에게 당해도,
J나 또 다른 R이 견뎌냈던 것처럼,
당신도 견뎌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새 정권도 지칠거라고,
당신의 결백을 다들 알아줄 거라고,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했어요.

너무 작은 나는 당신의 힘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우리, 살 수 있을까?

당신은 떠났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야 해요.
그런데 희망이 없어요.
지금 나의 이 깊은 슬픔은,
당신같은 바보 돈키호테도 쓰러뜨린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희망없음 때문이에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당신이 바꾸지 못한 나라인데, 그 누가 이 나라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어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몇 겹을 둘러싼 저 경찰 버스처럼,
새 정권의 꽉 막힌 태도가 우리를 숨막히게 해요.

지난 십 년, 참 편하게 살았어요.
그 십년을 만들어 준 당신에게 감사해요.
생전에 이 마음을 전했더라면 좋았을텐데요.


당신은 그 곳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을까요?
김수환 추기경이 없는 명동성당, 당신이 없는 봉하마을, 대한민국, 우리는 누구에게 기댈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게 될 것 같아요.
당신을 떠나게 한 그 사람들, 그 정권.


김수환 추기경이 웃고 있는 저 포스터에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마음의 평화를 갖기 위해 천주교도가 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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