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의 생각들

청계천을 걷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집회가 열린지 근 한달이나 되어 청계광장으로 갔다.

그간 나는 '미친소 너나 먹어', '광우병 소 반대' 등의 구호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채식주의자로서 였는지, 혹은 미스터 리의 정책 혹은 정치에 아예 관심을 끊고 싶어서 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암튼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거리에 나서는 것에 주저하게 만들었던듯 하다. 대운하며, 각종 민영화며, 물신주의적 실용주의며, 미스터 리의 모든 가치 체계가 나를 신물나게 했기 때문에 미국 쇠고기 수입도 그다지 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보다.

그런데 침묵은 동조라 했다. 미스터 리에게 동조할 것이 아니면 청계천 산책이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수를 채운다는 의미도 있을것이고.

환경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고, 10시쯤 청계광장에 도착했다. 촛불소녀는 서명을 받고 있었고, 스티커를 나누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청계광장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의료지원을 알리는 손글씨의 종이가 보였다.
두근거렸다. 마치 91년 강경대군의 죽음때문에 거리에 나섰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누군가가 주장하듯이 배후가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끌고,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시위현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차림의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청계천변을 따라 사람들의 물결이 움직였다. 나도 그 파도에 합류했다. 간간히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사람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하려는 공작인지 개별행동하라는 메세지를 적은 쪽지가 오고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었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동원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니. 사람들은 흘러가다가 버스정류장이 보이면 버스를 타기도 하고, 지하철로 내려가기도 하고, 밤 11시 까지 그렇게 서울의 한 복판 사람들은 물길을 만들어 흘렀다.

나는 중간에 대열을 잃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아쉽게도.

청계천을 걸으며 나는 두려웠다.

몇 년전 파병반대의 집회가 계속 되었을때도 결국 파병은 결정되었는데,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어도 통과가 되었는데, 한미 FTA에 반대하는 몇 만명의 사람들이 시청앞을 꽉 채웠어도 들은척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다시 한 번 무기력함을 느끼게 될까봐, 이 나라가 싫어도 선택할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봐, 당췌 국가 권력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국민은 쪽도 못쓰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누군가가 분신을 해도, 누군가가 제 목숨을 그렇게 버리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일을 놓고 배후를 논하는 작태를 보며, 인권은 무엇이며, 국가에서 개인은 무엇이며, 생명의 존엄함은 무엇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왜 시민들과 시민들의 친구이자 가족이며 이웃인 전경들이 대치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피해를 입고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는지, 분노가 인다.

대중을 바보 취급하며, 다 괜찮다, 괜찮을거다, 괜찮을 수 있다,며 거짓말을 하루에도 몇 가지씩 해대는 미스터 리와 그의 측근들을 혐오한다.

나는 리콜을 원한다.
4년후가 아니라, 5년후가 아니라,
당장 교환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