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備윤리

느리게 살기 - 채식

채식을 시작한 지 6년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쇠고기, 돼지고기 먹지 않기를 6년,
닭고기를 먹지 않게 된지 5년,
달걀, 해산물과 우유를 먹지 않게 된지 한 달이 되었다.

세미 베지타리안에서 시작해,
페스코 베지타리안,
마침내 비건이 되었다.

해산물을 먹을 때 까지는 그리 외식하기가 힘들지 않았다.
요즘은 정말 먹을 게 없다.
예민해 진 코와 혀는 멸치와 젓국의 냄새에 어찌나 반응을 하는지,
육수대신 맹물에 끓여 달랜 된장찌개에 멸치냄새가 폴폴 나는 것을,
모른 척 하고 먹으려 했던 부추김치에 젓국냄새가 솔솔 나는 것을,
용케도 알아낸다.

느리게 사는 것과 채식은 어떤 관계인가?

글쎄,
어떤 관계일까.

나는 채식을 하면서 동시에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려고 노력하며,
그 중에서도 유기재배를 통해 얻어진 농산물을 소비하려고 애쓴다.

가끔 대형할인점에 가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는 공산품 몇 가지(카레 가루, 밖에 없나?)를 구입할 뿐,
모든 먹거리는 생협을 통해 구입한다.

채식과 유기농산물 소비를 중심으로 살게 되면,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것이 어려워 진다.

물론 즉석 음식은 시간을 절약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원료가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 알 수 없다.
오랜 유통과정에서 상하지 않고 견딜 수 있도록 수 많은 첨가제와 보존제가 쓰였을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유기농산물 중심의 채식은 장보는 것 부터 (요즘은 인터넷으로 장을 보니, 비교적 간단하다. 주문을 하면 대문 앞까지 가져다 준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 채소가 유기농산물인지, 전화기유기농산물인지, 무농약농산물인지,
제철에 나온 채소인지, 하우스에서 화석연료를 써가며 재배된 것은 아닌지,
그렇게 정성껏 장을 보고,
간단히 씻고,
(유기농산물에는 잔류 농약이 없으니 여러번 씻을 필요가 없다. 물 절약 실천!)
요리를 한다.

생각하는 시간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려나.

느린 요리라, 뭐가 있을까.

요리는 간단히, 최소한의 조리로, 최소한의 양념으로 해야 제 맛이다.
소금, 간장, 인공감미료는 넣지 않고,
국물을 낼 때에도, 다시마, 버섯으로 맛을 내고,
꿀꺽...
밥에는,
현미와 반만 도정한 오분도미, 콩을 넣는다.
현미를 좋아하는 나는 흰쌀밥은 잘 못먹는다.
싱거워서.
콩이 많이 든 현미밥이 좋다. ^^*

된장찌개.
나의 완소 아이템이다.
국물은 된장으로만 해도 충분하다.
내가 이용하는 한살림의 된장은 정말 맛있다.
두부, 감자, (양파는 달아서 싫지만, 정인언니는 좋아한다.) 느타리 버섯 잔뜩,
고추 조금, 호박이 나올때는 호박을 넣고 끓인다.
정말 맛있다.

채식의 미덕은 설거지가 무척 간단하는 것이다.
고기나 해산물에서 나오는 특유의 냄새나 기름기가 없기 때문에,
세제를 쓰지 않고 아크릴 수세미 (이것도 참 좋은 지구의 친구-세제를 안 쓸수 있다는 측면에서)로 대충 헹구어도 말끔하다.

느리게 먹는 것의 의미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소득에 비해 먹는것에 돈을 많이 쓰는 편이다.
엥겔지수가 높다고 하던가.
시간도 많이 쓴다.
출근을 할라치면 꼭 도시락을 싸고.

나에게 먹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나를 활동하게 해 주고,
나를 즐겁게 해 준다.

먹는 일은 큰 의미가 있다.
'작은 우주'인 내 몸이 에너지를 취하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땅이 내게 허락한 생명을 취해,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에는 윤리가 있어야 한다.

채식을 한 지 6년이 되니,
먹는 것 하나에도 이리 많은 생각을 한다.